What happened to DR_DOS? 까마귀둥지

약자의 비명소리에 불과하긴 합니다만, 읽어볼만 합니다.
빌게이츠에 대한 비난이 '시기심'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말이죠.

아무나 세계 1위하는건 아닙니다. 쩝...
성공이란 이름하에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다면,
과연 우리도 저런 행동을 철저히 벤치마킹해야할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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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happened to DR_DOS?
Microsoft

By: David K. Every
?Copyrigh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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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반, Digital Research라는 회사가 있었나니, 창립자인 Gary Kildall은
마이크로 컴퓨터를 위한 첫 번째 디스크 오퍼레이팅 시스템인 CP/M (Control
Program for Microcomputers)을 만들어냈다. CP/M은 당시 취미적 수준이었던
마이크로컴퓨터의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되었다. 수년 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미리 제조된 가정용 컴퓨터를 디자인했으며 당시 관점에서 컴퓨터를
조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빼어난 아이디어였고, 성공도 거두게 된다.
마이크로(가정용) 컴퓨터는 이제 취미용 장난감에서 피어나 사업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는 데, CP/M 제조자들과 유저들의 또다른 그룹이 존재하고 있었다.

CP/M and DOS

IBM은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 지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으며 반응을 안할 수
없었다. 퍼스널 컴퓨터 시장이 거대한 메인프레임 시장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고로
IBM은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 작은 부서를 만들게 되는 데, 당시 IBM에게는 시간도
별로 없었고 자원도 별로 없었다. 이 부서가 바로 Boca Raton Florida 그룹이며
IBM-PC를 만들게 된다. 그들은 대중적인 부품들을 사용하여 저렴하고 느린
컴퓨터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IBM은 자사의 미니 컴퓨터와 메인프레임 시장을
갉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당시 제일 열악한 프로세서였던 인텔 8088 칩을
채용한다. (IBM의 주 시장은 메인프레임 시장이었다) 인텔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IBM과 인텔이 양사 각각 스톡 옵션을 챙겼기 때문이었다. 이 느린 컴퓨터는
구태의연한 디자인과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상표가 주는 마술은 거대했다.
바로, I-B-M.

IBM에게는 소프트웨어, 즉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필요했다. IBM 스스로가 OS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OS 제조는 5년 짜리 프로젝트였으며 이미 돌리고 있던 메인프레임용
OS를 싸구려 인텔 칩에서 돌리게 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터였다. 그래서,
보카 레이턴 그룹은 OS를 매입하기로 결정하고, 아웃소싱할 OS를 찾아나서게 된다.
하지만 이 결정도 결국은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가져왔다. (단기적인 생각은
언제나 비용 지출을 불러오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적자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한 몫 챙기고 달아나는 법이다)

IBM의 경영진들은 빌 게이츠의 어머니, 메리 게이츠와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출할 기회를 맞게 된다. 또다른 후보는 바로 디지탈
리서치였다. 하지만 디지탈 리서치는 성문화되지도 않은 계약을 법적으로 어떻게
다룰 지 몰랐고 IBM은 위협만 가했다. 반대로 게이츠에게는 좋은 법률가들이
있었으며, 게이츠 자신이 거짓말에 능숙했기 때문에 계약이 성립된다.(1) 게이츠는
또한 IBM이 게이츠의 법률가를 얕보게 만들어서 OS를 IBM에 판매한 것 뿐만
아니라, OS를 자신도 팔 수 있도록 계약을 맺기에 이르른다. 다른 회사가 자사의
R&D 비용을 대주고 판매는 자기가 한다? 이 얼마나 좋은 계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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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BM이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에 접근해서 OS를 작성하게 했는 지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빌 게이츠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Oh, No... see Digital
Research for an OS. We don't competewith our friends." 디지탈 리서치는 당시
IBM의 제안을 날려버린 직후였다. (개리 킬달은 자가용 비행기로 출장중이었다)
게이츠는 OS의 작성을 고려하게 된다. 사업과 마케팅에서 빌 게이츠의 무자비함은
여기서 보인다.

Cringley의 책, "Accidental Empires"와 PBS의 드라마 시리즈, "Triumph of the
Nerds"를 보면 이 루머가 그대로 나온는 데, 책과 드라마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호의적이다. 여기에 대해서 기록된 책은 얼마든지 더 많이 있으며, 그쪽이 더
신뢰감을 줄 것이다.

필자가 들었던 또 하나의 루머는 다음과 같다. 킬달이 IBM에 OS를 팔지 못한
이유는 그가 IBM 중역의 아내와 사건이 터져서 제명당한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루머를 들어보건데 킬달은 전형적인 70년대 인물인 것 같으며, 그 루머에
대해 확인할 길은 없다. 이 단락은 완전히 루머이며 재인용하지 않기 바란다.

IBM의 행동은 너무나 친-마이크로소프트적이면서 반-디지탈 리서치적이었으며,
제일 큰 동기는 역시 매리 게이츠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CP/M은 IBM-PC를 위한
제품으로 마케팅이 펼쳐졌었다. IBM이 디지탈 리서치를 전혀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CP/M을 그렇게 판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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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뭔가 갑자기 만들어내야 했다. 그들은 옛날
언어(베이직)을 적용시켰으며, 그들은 OS를 갖고 있지 않았었다. 게이츠는 IBM에게
DOS가 거의 완성된 버전인 양 믿게 했기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OS를
만드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웃하는 회사로부터 CP/M을 직접 베낀
소프트웨어를 매입한다. (잘 베끼지도 못했음은 물론이다) 이 회사는 바로 Seattle
Computing이었으며 그 제품은 QDOS (Quick & Dirty Operating System)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제품을 50000 달러에 권리를 사들이고 약간 변화를 가해서
완성시키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IBM-DOS와 MS-DOS 1.0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제품이다)이 나온다.

디지탈 리서치(개리 킬달)은 자사의 OS를 베낀 것에 대해 격노한다. 그때까지 그는
게이츠를 신사협정의 동료로서 생각하고 서로의 시장을 침범하지 않을 것으로
간주해오고 있었다. 디지탈 리서치가 랭귀지 시장은 진출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마이크로소프트도 OS 시장에 진출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게이츠는 OS 시장에
들어가면서 더우기, CP/M을 베껴서 OS를 만들었다. 개리는 지적재산권 침해로
마이크로소프트를 고발하려 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법률가들은 IBM과 합세하여,
복사의 혐의를 시애틀 컴퓨팅이 뒤집어 쓰게 한다. 시애틀 컴퓨팅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에서 어떠한 돈도 덜지 않았기 때문에, 디지탈 리서치는
어떠한 합리적인 혐의를 둘 수 없었고 더더군다나 IBM과 싸울 형편도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의 법률가들은 킬달보다 더욱 거대했기 때문에 그는 재소를
포기하게 된다. 그는 이제 품질로서 승부하기로 결정하지만, 앞으로의 사건은
더욱더 비참해질 따름이었다.

디지탈 리서치는 제품의 품질이 아닌, 정치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IBM의 OS에 대한
권리를 잃었다. 빌 게이츠는 거짓말을 했고 법률로서 모호하게 만들어버렸지만
품질은 디지탈 리서치가 우월했었다. 디지탈 리서치의 CP/M86은 IBM/MS-DOS보다
훨씬 버그도 적은 우월한 시스템이었다. 디지탈은 CP/M을 IBM과 MS-DOS의
경쟁자에게 판매하였지만 IBM의 하부 부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IBM-DOS가 무료로
나오는 반면 디지탈 리서치는 라이센스 요금을 받아야 했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은
품질이 아닌 가격을 선택해왔기 때문에 CP/M86은 성공하지 못했다.

Windows and GEM

개리 킬달은 GUI(그래피컬 유저 인터페이스)가 미래라고 보아왔기 때문에 GUI를
하나 만들기로 작정한다. 그와 그의 연구팀은 GEM(Graphics Environment
Manager)을 만들게 된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맥 오에스의 멋짐을 간파하고 맥
오에스를 에뮬레이션하려고 노력하게 되지만, 한편 디지탈 리서치가 PC 시장에서
비슷한 상품으로 성공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게이츠는 다른 사람들의 연구 성과를
베끼거나 훔치기 시작하였고, 다시 한 번, IBM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그리고
OS/2)를 개발하는 거의 모든 비용을 대게 한다.

디지탈 리서치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펀치를 받았었다. 사실, 디지탈
리서치의 GEM은 빌 게이츠에게 비슷한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GEM은 마이크로소프트나 IBM이 그 이후 6년여간 필적한 제품을 못만들 정도의
우수한 제품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더럽게 싸웠다. GEM보다
훨씬 우월한 제품을 만들어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대신, 마케팅 트릭과 FUD,
거짓말들로 우월한 제품을 무너뜨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대중들에게 GEM보다 훨씬 우월한 윈도우즈 버전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신시켰고 늘상 "6개월 후면 나옵니다"라고 발표하였다. 이 발표는 GEM의
매출을 떨어뜨리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DOS의 메이커)가 어떤 제품을 들고 나올
지 모르는 데 구태여 GEM을 미리 사둘 필요가 없던 것이다. 같은 이유때문에
어플리케이션 개발자들도 GEM용의 제품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었다. 18개월
후에야 마이크로소프트는 버그로 가득차고 GEM의 품질과 유용성과는 거리가먼
윈도우즈 버전을 들고 나오면서 버전 2가 6개월 후에 나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다시 한 번 시한을 얘기한 것이다. 개발자들과 소비자들은 다시 한 번 기다리게
되었고 GEM을 구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윈도우즈 버전 2.0이 나왔을 때는 18개월
후였고, 여전히 버그로 가득찬 쓰레기에 불과했다. 당시 산업계는 GUI에
목말라하고 있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약속은 지켜진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이제는 누구도 GEM이건 무엇이건 간에 GUI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누구도
GEM을 사지 않았고 GEM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지도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훨씬 우월한 제품"이 "몇 주 후면" 나올 것이라고 계속 발표했기 때문이다.
디지탈 리서치는 돈을 벌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가 없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대중을 계속 기만했다.

3년이 흐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침내 윈도우즈 버전 3을 보여주었고, 이전
버전보다는 다소 나아보였다. 즉, 소비자들은 윈도우즈 버전 3을 구매했다.
윈도우즈 버전 3은 실상 GEM의 첫 버전과 거의 동일했으며, 당시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뛰어난 마케팅을 펼치게 된다. 그들은 개발자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가 OS/2 개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이제 모든 산업의
개발자들은 OS/2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를 만드는 동안, 모든 개발자들은 윈도우즈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그러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미래가 윈도우즈(IBM이 개발 비용을 댔다)에
있지 OS/2에 있지 않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고 OS/2 역시 죽게 된다. 다른
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전략을 눈치챘지만 시간은 이미 흐른 뒤였다.
윈도우즈 3.0이 나오고 맥용으로 출시했던 자사의 어플리케이션을 윈도우즈에서
돌아가도록 포팅시키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PC GUI 시장은 물론 어플리케이션
시장도 잠식하면서, 자라나고 있던 수많은 회사들을 파괴시킨다.

윈도우즈와 맥, GEM 이전에도 다른 GUI는 많이 있었다. Geo-Works와 Visi-On 등이
있었지만 이들 GUI는 모두 디지탈 리서치의 운명을 밝게 된다.

DR-DOS vs. DOS

개리 킬달은 완고했다. 그는 디스크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만들었고 결코 시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윈도우즈와 GEM이 싸우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DOS에 대해 집중을
하지 않았지만 디지탈 리서치는 그 반대였다. 그들은 기능을 더하면서 CP/M86을
DR-DOS (Digital-Researches' Disk Operating System)로 바꾸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에 필요한 업그레이드를 수년 째 안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DR-DOS는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번들하는 데 비용도 더 적게 들엇다.
DR-DOS는 위대한 제품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 시장 점유율은 90%에서 80%로
떨어졌으며, 당시 기준에서는 굉장한 하락이었다. 게이츠는 그런 경쟁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또다시 괴상한 전략으로 싸움에 대처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금 마케팅을 사용하여, 다음 버전의 OS가 DR-DOS보다 더 많은 기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산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거짓말을
충분히 보아왔기 때문에 과거만큼 마이크로소프트를 신뢰하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좋은 제품을 제공하면 그 제품을 사기야 하겠지만 바로 현재
DR-DOS라는 우월한 제품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말로 더럽게 싸움을 건다.

첫 번째로, 그들은 윈도우즈를 내세운다. 윈도우즈는 DOS상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윈도우즈를 사용하면 도스도 사용하는 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가 DR-DOS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검색되면 윈도우즈 인스톨러는 "윈도우즈는 MS-DOS 상에서
돌리는 것만 보장됩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내보냈다. 이 메시지는 수많은
유저들에게 두려움을 주어서 DR-DOS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물론 윈도우즈가
DR-DOS에서 돌아가지 못할 기술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완벽히 컨트롤을 하였다. 이 메시지는 너무나 불법적이었기 때문에 실제 출하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는 이 메시지가 지워져 있었지만, 퍼블릭 베타 버전은
그런 메시지가 나왔었다. 하지만 그정도로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DR-DOS를 버리게
된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적적으로 DOS의 업그레이드를 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DOS의 업그레이드를 수년 간 하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런 관측은 필자에게도 너무나 냉소적으로 들린다.
도스의 첫 버전에는 너무나 버그가 많았지만 DR-DOS는 대부분의 필요한 기능들을
더하였었다. 같은 방식으로, 수많은 투자가 DOS에 행해졌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우 빠르게 많은 기능들을 덧붙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어플리케이션 중에는 DR-DOS상에서 갑자기 멈춰버린 것도 있었는
데, 필자는 이런 사건은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DR-DOS에게 먹인 마지막 펀치는
갑자기 일어났다.

DR-DOS에게는 시장에 설 기회도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OS(DOS와 윈도우즈)에 대한 라이센스 요금을 바꿔버린다. 그들은
제조업체들에게 MS-DOS와 윈도우즈만을 공급할 경우 상당한 요금 인하를 하겠다고
제시한 것이다. 하나의 머신에 타사의 오퍼레이팅 시스템도 제공할 경우에는 MS의
오퍼레이팅 시스템에도 지불해야 했지만 할인혜택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방침은 100%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팔지 않는 업체들에게는 치명타였다. 후에 이
전략이 독점적 가격 산정으로 금지되었으며, 법무부가 나서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피해가 나온 이후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금 시장에서 승리하였다. 제조업체들은 설사 비용이
덜든다고 하더라도 DR-DOS를 먼들할 수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제조업체들에게 100% 마이크로소프트이냐 NO 마이크로소프트이냐의 선택을
강요했고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하나도 채용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또한 DR-DOS의 명성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어플리케이션과 윈도우즈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위협으로 손상되었고, MS-DOS는 어느모로보나 이제는
DR-DOS만큼 좋아졌었다. 따라서 DR-DOS는 죽었다.

개리 킬달은 다시금 격노했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1994년 52세의
나이로 7월 11일 살해된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 지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가
자살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누군가 그를 조용하게 하려 죽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필자는 그가 논쟁중에 살해되었다는 쪽을 믿는 편이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는
법적인 문제 때문인지 모두가 입을 다물었었다.

필자가 듣기로는 말년의 그는 성격이 변했으며, 더욱 어두워졌다고 전해진다.
누군가 빌 게이츠의 업적을 칭송하면 그는 매우 뒤틀려했으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는 식의 전개는 그를 정말로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뛰어난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마이크로 컴퓨터 시장을 혁명적으로 일군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다른 사람들의 업적을 자기가 챙기지
않았으며, 인류 전체에 공헌한 셈이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Post Mortem

디지탈 리서치는 후에 Novel사가 매입하였다. 노벨은 DR-DOS를 자사의 Networking
Operating System에 한 부분으로 만드려고 애썼지만, 노벨이 사들인 모든
회사들이나 제품들은 후에 망하곤 했었다. 노벨의 매입은 DR-DOS를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파괴시켜버렸다.

DR-DOS는 후에 노벨에서 Calde로 팔려나가서 "OpenDos"로 이름을 바꾸고 퍼블릭
도메인 제품으로 남게 된다. 칼데라는 DR-DOS를 완전히 파괴시킨 혐의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소했었다. --디지탈 리서치는 제소할만한 능력이 없었고,
노벨은 두려워서 제소를 못했었다. (노벨은 윈도우즈와 노벨 네트웍을 지원시킬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력이 필요했다. 노벨이 반-마이크로소프트적인 행동을
벌인다면 윈도우즈는 노벨 네트웍과 갑자기 연결이 끊길 터였다)

뛰어난 제품이 미국에서 더 열등한 제품을 가진 대기업에게 당하고만다는 사실은
정말 역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쟁이 나빠서가 아니다. 이런 일은 "evolution
in action"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슬픈 점은 공정한 경쟁이 죽었고 그저 크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게임에 있어여 한다는 게이츠같은
사람들과 회삳들은 품질과 공정한 경쟁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말그대로
"어떠한 비용"을 들여서도 이기기만하면 되는 것이며, 그 비용은 소비자들에게는
너무나 막대하다. 얼마나 생산성이 줄어들었는 지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직장과
사업들이 파괴되었는 지, 또,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열악한 제품과 마케팅에
낭비되었는 지를 생각해보라. 불량배들에 대해 관용을 보이기 이전에 우리는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산업계를 정부가 컨트롤해야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들과 언론, 몇몇 회사들이 그런다는 사실에 필자 또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http://www.mackido.com/History/History_DrDos.html

Created: 05/11/97
Updated: 07/22/98

덧글

  • 로무 2004/06/18 16:28 #

    다른건 몰라도, 마소의 제품을 보면 이것이 적어도 "사용자의 편의와 보다 편안한 컴퓨터생활"을 위해 개발된 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지..;
  • ZesuSB 2004/09/24 12:36 # 삭제

    역시.버벅거린다더니.더러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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